'나는 아일라로 갑니다'
'아일라??'
아일라라고 하면 대체 그곳이 어딘지 되묻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유명 관광지가 아닌데다가 알파벳으로 쓰여진 것과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지도에서 아일라(Islay)를 찾는데도 애를 먹는다(혹자는 '아일레이'라고 발음하지만 현지에서는 아일라라고 말한다.)
아일라 여행 얘기를 하기 전에 아일라 여행을 오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 이번 여행의 이유이자 목적은 아일라를 방문하는 것인데, 바로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가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생에 한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를 산지에서 원없이 마셔봤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스코틀랜드의 싱글 몰트 위스키 생산지는 크게 하이랜드, 로우랜드, 스페이사이드, 아일라, 캠벨타운으로 나눌수 있는데 각 지역에 따라 맛과 향의 개성이 각기 다르다.
아일라섬의 증류소들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종류의 몰트 위스키를 시도해보았지만 내 손안에 들려 있는 위스키를 보고 있노라면 거의 예외없이 아일라산 위스키였다. 가장 개성이 강한, 거칠고 스모크 피트 향이 진동하는 위스키. 이 위스키적인 매력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일라 위스키를 마시기 위해 아일라를 여행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국에 나처럼 별난 사람이 없는 것인지 여행준비를 하면서 아일라 섬 여행정보는 좀처럼 구하기가 힘들었다. 섬에는 배를 타고 가야하는지 비행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지 당최가 정보가 없다.
그러던 중 연희동 책바 주인장의 블로그를 발견하게 되었다. 주인장은 1년 전에 아일라를 여행했다. 나와 같은 이유로.
'이것 봐라, 나와 똑같은 놈이 있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책바를 직접 방문했다.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흥미를 가지기 마련이다.
바 이름이 '책바'라니 흥미로웠다. 심야서점이라는 컨셉을 가진 이 바는 누구나 와서 책을 읽으며 술을 한잔하는 그런 편안한 분위기의 바였다.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주인장은 술집과 어울리지 않게 꽤나 인텔리적인 풍모가 있었고 정돈되어 보였으며 야단스럽지 않고 조곤조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곳곳에 주인장의 세심한 센스가 묻어났다. 내가 위스키만큼 테니스를 사랑하는 것 처럼 바 주인장도 위스키만큼 책과 글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아일라와 위스키 얘기를 꺼냈더니 주인장의 눈이 반짝하고 빛난다. 나는 좋아하는 것을 얘기할 때 눈을 반짝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주인장은 지난 여행을 회상했고 나는 다가올 여행을 기대했다.
'위스키 때문에 아일라에 간다고요? 그럼 이거 읽어봤겠네요?'
하며 건넨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다. 나보다 그리고 주인장보다 훨씬 더 전에 아일라를 하루키가 여행했다니... 아시안 아일라 트래블러의 선조를 만난 격이었다. 하루키도 위스키를 원없이 먹어보고자 아일라와 아일랜드를 여행했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5년전 6월에.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구매하고야 말았다. 책을 살때 주인장이 자신이 마음에 들어한 손님에게만 명함 겸 책갈피를 준다고 했는데 그 말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명함을 받아왔다.
그리고 지금 책바 주인장과 하루키, 내가 여기 아일라의 이름 없는 해변에 같이 있다.